MENU
INTERVIEW / 우리가 만든 우리의 옷

김남희 돌실나이

의상디자인학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의상이 좋아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만 해도 패션은 가정학이었고 여성스러운 학문의 이미지가 강한 학문이었는데, 저랑은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1학년 때는 학교도 잘 안 나갔고, 꿈도 열정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되나 막막했어요. 그러다가 철학을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뭔가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때부터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제가 선택한 의상이라는 전공 안에서 나라에 기여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때 선택한 방향이 바로 ‘우리의 옷 이었던 것이죠.

 

‘우리의 옷’을 가지고 졸업작품을 해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우리의 옷’아 어떤 것인지 연구했습니다. 〈규합총서〉도 읽어보고, 전통 염색 전문가에게 찾아가 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자료도 구하기 어려웠고, 생활한복이나 한복의 일상화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었을 때라 어떻게 정의를 해야 할지도 모호해서 직접 체계화 시키겠다고 생각했죠. 3학년 때는 ‘의상 문화 연구회’(이후 ‘우리 옷 입거리 연구회’로 전환)를 만들어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할 무렵에는 한복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졸업작품을 구성했어요. 1부는 노동복, 2부는 평상복, 3부는 외출복으로 구성했고, 무명에 천연 염색을 하거나 모직 원단으로 한복을 만드는 등의 시도를 했습니다.

 

졸업 후’우리 옷 입거리 연구회’를함께 했던 동기들과 함께 잠깐 의식주 문화 연구회 질경이 옷 파트에 열 달 동안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현재 이새를 운영하고 있는 87학번 정경화 대표에요. 이후 나와서 함께 돌실나이를 만들었고 3년간 동업을 하다가 돌실나이는 한복, 이새는 자연주의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눠지게 되었어요.

 

초반에 돌실나이는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면서 생활 속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궁중 복식을 누린 건 상위 1% 뿐인데, 왜 소수가 입었던 옷은 기리면서 다수가 입었던 옷은 그렇지 못한 취급을 받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우리가 이것을 단정하고 편안한 생활형 옷으로 만들어보자고 해서 노동복(워크웨어)의 개념으로 생활 한복을 만들었어요. 운이 좋게도 당시의 자연주의 흐름과 정부사업의 영향으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어요. 그러다 시장이 커지면서 카피 제품들과 품질 미달 제품들이 많이 생겨났고, 공급 과잉으로 값이 내려가면서 ‘생활 한복은 촌스럽고 저렴한 옷 이라는 인식과 함께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매거진을 준비하기도 하고, 해외 박람회에 출품도 하고, '아회’라는 고품격 브랜드를 선보이는 등 많은 시도를 했어요.

 

일반인들이 한복을 많이 입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일반인들에게 한복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대신 저는 유니폼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헤요. 그 일환으로 각계 단체나 미술관, 박물관에 한복 유니폼을 납품 하기도 하고, 한복 교복을 제안하고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한복 문화를 어떻게 현대와 어우러지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제가 가진 노하우 들을 활용하여 우리 옷이 사랑받는데 기여하려고 해요. 또 앞으로는 한복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경험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며 함께 이 시장을 키워 나가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졸업작품과 졸업작품을 준비하며 했던 공부와 연구, 그 시간들로 평생 먹고 살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니면서는 학교에서 배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졸업을 하고 나서 보니까 절대 그렇지 않더라고요. 오랜 시간 동안 뭔가를 깊게 생각하고, 공부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특히나 본인이 세운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들인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뭔가 되어야지’ 하는 목표를 잡고 그것만 생각하면 그 목표는 도망가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지금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다 어느 날 눈을 떠보면 그 목표에 근접 해 있을 때가 있어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살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덧붙여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렇지 않거든요. 사람이 서로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거고, 내가 좀 힘들 때는 그들이 나를 이끌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도 있죠. 서로가 사랑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게 제 꿈이었는데 나름대로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 모두 오랜 시간 함께 했고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사이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고 세상에 나갔으면 좋겠어요.